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 불안

세실류 2017. 8. 19. 01:03

예전에 알랭드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몇 장 읽다가, 연인이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 간지럽게만 느껴져서 덮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을 '사랑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다. '우리는 왜 불안할까?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와 일상의 언어를 통해 매우 생생하고 선명하게 와 닿는 책이다.

***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두 불안을 느낀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인이나 가족으로부터의 사랑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기도 하다. 이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합당한 지위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이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특히,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더 불안하다. 예전에는 지위가 태어남과 동시에 정해지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반면 현대에는 (표면적으로는) 평등한 사회가 되면서, 지위가 그 사람의 노력이나 성실성 등 많은 자질을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주입되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다양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실하고 도덕적인 것이 사회적 성공의 필요 충분 조건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알랭 드 보통의 해법은 다섯 가지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ㅡ 철학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위라는 표면적인 것이 우리의 본질을 결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예술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부와 권력이 아닌 도덕적 관점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치를 통해서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위가 곧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는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수 있다. 기독교는 우리 삶의 유한성과 개인의 한계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표면적이고 남에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이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보헤미아는 부르주아지를 비판하며, 기존의 사회적 위계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일깨우려 했다.

 

***


묘하게 위로가 되는 책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불안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최근엔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평균 이상의 삶을 살지 못할까봐 항상 두려웠다. 때문에 학생 때는 시험 점수 몇 점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듯 우울하기도 했고, 졸업할 때 즈음에는 행여나 남들보다 시기가 늦어 뒤쳐질까, 남들이 가는 정도의 회사를 가지 못할까 두려웠다. 취업을 하고 나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더욱 불안했다. 이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을지, 사회에서 이 회사의 이름표 없이 내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 사람일지에 대해 항상 조급했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불안의 극복은 모두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결국 더 노력하고, 내 자신을 더더욱 밀어붙인다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바꾸어야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는 나만이 정할 수 있다고, 이 자리로 나를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닌 인생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슈바이처도, 트럼프도, 나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한 줌의 흙으로 평등해진다고.

따라서 내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되, 언젠가는 끝날 인생이니 내게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매우 심플한 결론. 살아가면서, 특히 회사 생활을 하며 일상에 매몰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렇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


알랭 드 보통이 인용한 격언이나 책 내용 중에 와 닿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 궁정에서의 생존법이라든지... (보통 우리가 냉소적으로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이래야 해, 하는 내용과 너무 비슷해서 소오름.)
다른 사람이 비합리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비난하려 할 때 기억해야 할 어구들이라든지.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쇼펜하우어)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책이었다.

왕추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요 책도 읽고 있는데 이것도 추천!!! 다 읽고 나면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도 읽어야 할까... 부모님 집 책꽂이에 몇 장 안읽은 채로 고이 꽂혀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