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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갑자기 2012년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생각이 났다.

그곳에서 내 이름은 로시따, Roscita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길래,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을 말했다.

순례길 가기 전 스페인어 수업을 한 학기 들었는데, 교과서에서 종종 본 Rosa라는 이름과... 스페인 사람들이 귀엽게 말할때 붙이는 -ita라는 접미사를 합쳐서 만든 이름, Roscita.

별 생각 없이 말했는데, 내 이름 말할 때마다 스페인 사람들이 엄청 빵빵 터지는 거 아닌가?

알고보니 영어로 치면 'Pinky' 정도의 아주 유치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저 이름을 떠올리면, 그때 나를 불러줬던 그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게 베풀어줬던 호의들도.

다시 떠올려 봐도 참 아름답고 마법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순간들로 가득한 그 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더 막막한 것 같다.

그렇지만 얼마 전 갑자기 생각난 김에, 더 늦기 전에 기록해보려 한다.

 

 

2012년,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대학 졸업 전 마지막 여름방학.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방학을 맞아, 뭔가 그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단 졸업하고 나면 일주일 이상 시간을 내기는 힘들테니, 긴 방학엔 뭐니뭐니해도 '여행'일테고... 또 뭐 없을까 고민하던 도중, 친구가 한참 전에 나한테 지나가듯이 이야기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각났다.

 

"자연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하니 나중에 한번 가보라"고 했던.

물론 그 친구도 아직 다녀온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좋아했던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걸어서 유명해진 곳이었다. 그는 이 길을 걸은 후 '순례자'라는 책도 썼다.

 

뭔가 운명처럼 내 맘속에 떠오른 그 곳. 800km, 한달을 꽉 채워 매일 25km씩 걸어야 한다. 완주하는 데 한달정도 걸린다고 하니, 학생때 아니면 정말 하기 힘들겠다 싶었다.

오래되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딱히 '깨달음'을 얻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동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고, 지금이 아니면 어렵겠다는 생각에, 그럼 지금 가야겠다 싶었던 것 뿐.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아빠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찾아보시고는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내가 여행 준비하는 데 나보다 더 열정적이셨다. 배낭도, 침낭도, 등산화도.... 나는 그냥 적당한 걸로 아무거나 사야겠다 싶었는데, 아빠는 날 데리고 서울의 온갖 아웃도어 용품 가게들을 다 돌아다니면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간택된 제품들만 골라골라 사 주셨다. ㅋㅋㅋㅋ 잠발란 등산화, 아빠가 점찍어둔 모델 사려고 파주에 있는 본사까지 갔던 기억이..;;;;; 우비도 아웃도어용으로 사준다는 걸 겨우 말렸다. 비 며칠 올지도 모르는데, 짐 많아지면 잃어버릴까봐 부담만 된다고... ㅋㅋㅋㅋ

 

그리고 출국하던 날. 날 배웅하러 와준 효갱이가 찍어준 사진 ㅋㅋㅋㅋㅋㅋ

 

 

 

 

유럽여행 가는데 저렇게 추레하게 하고 갔었다니..-_-;;;

순례길 가기 전 독일에 들러 친구도 만나고, 파리 여행도 하려고 빨간 트렁크에 여행 짐을 따로 챙겼다. 순례길 짐은 도이터 백팩에 우겨넣었고. 저 촌스러운 파란색 모자도 나름 비싼,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나온 모자였음... 정말 순례길에서의 나는,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겠다는 생각은 1도 없이, 오로지 '생존'과 '걷기'에 최적화된 옷차림이었다.

 

저 옷차림 때문이었을까?; 유럽에 도착해서 입국심사 하는데 "2달간 여행할 돈은 충분히 있니?" 라는 질문도 받았었지....-_-;;;;;;;;;;; 내 답변은 "음, 나 말고 아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 ㅠㅠㅠㅠㅠㅠㅠ 효도해야겠음....

 

 

독일과 프랑스를 2주간 여행하고, 파리에서 에펠탑 야경 보면서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와야지' 다짐한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방에 위치한 이룬(Irun)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커피도 사줬었는데....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기차타고 어딜 가나 궁금해서 그랬을까? 영어가 안 통해서, 내가 (공부는 안하고 책만 챙겨간) '프랑스어 첫걸음의 모든 것' 핸드북을 뒤적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ㅋㅋㅋㅋㅋㅋ 뭐 대충 내가 알아들은 바에 따르면, 보르도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보르도에서 내리시고 기차가 스페인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점점 적어졌는데, 어떤 한국인 여자분을 만났다! 그분도 혼자 여행하고 계셨는데 거의 6개월째 여행중이시라며.... 나보다 더 자연인에 가까운 모습과 포스에 놀라고 반갑기도 하고 ㅋㅋㅋㅋ

 

 

 

 

드디어 도착한 이룬!

음....... 엄청난 시골이었다. 이 지역은 바스크(Basque)라는 주에 속하는데, 요즘 스페인에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로 시끌시끌한 곳이다.

내가 갔을 때도 그런 분위기가 있긴 했는데, 스페인의 주(州)이기도 하면서 Basque country...라고도 불리우는, 스페인인듯 스페인 아닌 스페인 같은 곳이랄까;;;;

이 지역에서는 Vasco, 또는 Basque language 라고 불리우는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길거리에 간판들도 모두 Vasco로 쓰여 있어서, 나름 스페인어 몇개월 배우고 갔는데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서 당황;;

그래도 대화할때는 스페인어로 무리없이 대화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스페인어가 너무 짧아서 겨우겨우 소통했지만ㅋㅋㅋㅋㅋㅋ

 

이 순례자의 길에는, 곳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 데 뻬레그리노(albuergue de peregrino)가 있다. 영어로 하면 hostel for pilgrims 정도일까나... 가격이 (내가 갔을때 기준) 5유로 내외로 굉장히 저렴하다. 물론 저렴한 만큼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겠지만.... 대부분이 남녀 구분 없이 한 방에서 자는 mixed dormitory 형태이고, 당연히 욕실은 공용 욕실을 써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잠자리 불편한 것 보다도, 여행 가서 모르는 사람이랑 엮이는 거 불편하고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인데, 그 땐 어떻게 저렇게 지냈는지 신기하다. 그래도 그 땐 내가 좀 더 어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혼자 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기차역에 내려서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것 부터가 난관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 떠나기 전에 길 같은 걸 확실히 찾아놓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당시에는 돈 없는 학생이었기에 데이터 로밍이나 현지 유심칩 같은 건 엄두도 못 내서, 구글 맵으로 찾아볼 수도 없었으니까. 어떻게 근처에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어떤 여자애한테 짧은 스페인어로 알베르게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걔가 친절히 설명해 준 데로 가니, 거기는 알베르게는 맞긴 했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는 아니었다.; 스페인에서는 호스텔 같은 숙소를 모두 알베르게로 칭하는 것 같다. 그 호스텔에는 되게 어려보이는 애들이 자기들끼리 깔깔대면서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서로에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외쳐대면서. 그 사이에 빨간 트렁크를 질질 끌고, 등에는 내 덩치만한 백팩을 메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어쨌든 내가 잘못 찾아왔구나 싶어, 그곳을 나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이번에는 '알베르게 데 뻬레그리노가 어디냐'고 정확히 물었더니, 제대로 찾아올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순례자 여권과 Camino del Norte 가이드북을 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몇 가지 루트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루트가 Camino de Frances, 프랑스 길이고, 내가 선택한 길은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Camino del Norte, 북쪽 길이었다.) 순례자 여권에 첫 도장을 찍고, 짐을 대충 던져놓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순례자의 길 오기 전에 몇주동안 유럽을 여행했기 때문에, 짐이 꽤 있는 편이었다. 지금은 고장나서 버린, 빨간색 작은 캐리어 하나. ㅎㅎㅎ 그 캐리어를 끌고 800km를 걸을 순 없었기에, 어떻게 처리를 해야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순례자의 길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한 한인민박에서, 한국인 순례자들의 짐을 약 한달동안 보관해주는 곳이 있었다. 그 곳으로 내 캐리어를 부치기로 했다.

 

또 무작정 밖으로 나가 우체국을 찾았다. 지나가는 아줌마 한 분을 붙잡고 우체국이 어디냐, 아직 열었냐 물었다. 내가 갔을 때 이미 4시가 넘은 시각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아직까진 우체국이 열려 있다고 했고,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힘겹게 찾아간(?) 우체국. 거기서 또 한번의 난관에 맞닥뜨렸다. 일단 내 트렁크를 보여주니 소포를 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카운터 직원이 트렁크가 들어갈만한 박스를 줬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묻는데, 알아들을 리가 없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ㅜㅜㅠㅠㅠ.... 카운터 직원분이 큰 소리로 "혹시 영어할 줄 아는 분 있어요????" 라고 외쳤고 아무도 나서는 분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갑자기 좀 부끄러워졌는데, 카운터 직원분이 나한테 송장을 하나 주면서 적어오라고 했다. 가방 속에서 한인민박 주소가 적힌 수첩을 꺼내 펼쳤는데....... 어디다 뭘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_-;;;;;;;;;;;;;;;;; 송장과 수첩을 번갈아가면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떤 착하게 생긴 청년 한명이 옆에 오더니 내 수첩을 보고 대신 송장을 적어줬다 ㅠㅠㅠㅠ.... 그리고 나한테 영어로 이것저것 묻더니 우체국 직원분에게 스페인어로 얘기도 해주더라. 어찌나 고맙고 감동적이던지... 근데 왜 영어 잘하면서 진작 안 나섰던거니? ㅋㅋㅋㅋㅋㅋ 나 짐 들고가야 하는 줄 알았자나?????

 

무사히 짐을 부치고, 그 청년에게 Gracias, gracias를 몇번이고 말했다. 그 착한 얼굴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가 않네. ㅋㅋㅋㅋ 이 때 뿐만이 아니고, 순례자의 길 걷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얼굴이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작은 트렁크 하나마저 부쳐버리고, 근처 수퍼마켓에 들러 다음날 걸으면서 먹을 것들을 샀다. 작은 바게뜨 하나, 체리, 치즈, 물, 뭐 이런것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갔는데,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동양인도 하나도 없고, 그렇게 남녀가 같이 한방에서 자는 도미토리도 처음이라 괜히 긴장도 되고 어색했다. 이 날 얼마나 어색했는지 사진 하나 남기질 않았네. ㅋㅋㅋ 그치만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날인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떠올려 봐도 아직까지 선명한 걸 보니.

 

아무튼 낯선 분위기 속에서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어색어색해 하던 도중 어떤 독일인 남자애랑 대화를 하게 됐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영어가 되게 잘 통했다. Spiritual한 것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애였는데 나한테 왜 순례자의 길에 오고 싶었냐, 뭐 이것저것 묻더니 나에게 북쪽 길 지도를 줬다. 자기는 여기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북쪽길을 거꾸로 걸어와서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어색해 하던 내게 말도 걸어주고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줘서 고마웠던. 정신적, 철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만큼 종종 명상도 한다던, 그만큼 눈빛이 강렬하던 애였는데, 지금쯤 어디서 잘 살고 있으려나? ㅎㅎ

 

 

까미노의 첫날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일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중간에 집에 가고 싶어지려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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